수능 영어 청취력 시험의 불편한 진실

다음 달에 대학 입학 수능시험이 있다. 오래전에는 영어 학습은 거의 문법 중심으로 학습을 했었다. 그러다보니 배운 영어를 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쓸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기에 최근에는 문법위주의 영어 학습에서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등의 종합적 학습으로 변하였고, 특히 말하기와 듣기학습에 많이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각종 어학 시험인 TOEIC, TOEFL, IELTS 등 문법, 단어 중심의 시험문제에서 생활에 효용성 있는 문제로 바뀌어 평가시험도 말하기 듣기 평가가 강화되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대학 입학 수능시험에서도 영어 청취력 시험을 강화하여 시행하고 있다. 

얼마 전 어느 고등학교 교장선생님 말씀이 학교를 수능시험장소로 제공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어 청취시험 이후 영어의 발음소리가 잘 안들려서 시험을 잘못 보았다는 항의가 많다는 것이다. 가끔 지역 고등학교에 특강을 가기도 한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떻게 이런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지 기성세대로서 너무나 큰 죄책감을 느끼고 온다. 교실이 너무 울리고 외부 소음으로 인해 도저히 학습공간이라 볼 수가 없음을 보게 된다. 어떤 강의실은 공장보다도 소음이 나쁜 곳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런 강의실에서 영어 듣기 평가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암담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강의실의 지나친 울림, 대형 에어컨의 소음, 선풍기 소음,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음, 운동장에서 오는 소음, 때로는 도로에 인접한 강의실에서는 도로 자동차소음 등 공부를 하는 강의실이라기보다는 각종 소음의 전시장 같다. 또한, 강의실마다 방송음향 시스템의 성능이 다르기 때문에 소리의 명료도가 다 다르고, 같은 강의실이라도 위치에 따라 소리의 명료도가 다르기 때문에 청취하는 곳이 어떠한 강의실이냐에 따라 영어 청취력 평가 시험은 불공평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험 평가를 받는 강의실과 좌석의 위치에 따라 청취시험 점수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처럼 불공정한 시험으로 인한 결과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의 모든 책임을 입시 수험생에게 주고 있는 현실은 반드시 보완해야한다. 소리명료도의 불평등으로 인한 미세한 점수 차이가 그 학생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소리 명료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건축음향과 방송음향시스템의 기준안이 없는 실정이다. 현재 방송음향설비기준은 재난 시 이를 전달해 주는 안내방송의 요소 정도로 소방법규의 관리를 받고 있으며, 방송음향설비 기준안도 따로 없어 전기 및 통신 설비의 일부로 처리되고 있다. 예로 방송음향시스템의 접지가 전기 및 통신 접지와 같아 사용할 때 오히려 접지로부터 발생하는 각종 잡음이 음향 스피커를 통해 잡음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미 선진국의 경우에 모든 공간의 방송음향시스템의 설치는 단순히 비상용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요소가 아니라 적정 음압, 적정 잔향, 소리의 명료도 등을 최적으로 설계하여 공간 특성에 적합하게 구성하고 있다. 

IT 강국, 반도체 강국, 생명공학의 강국 한국이라고 칭하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기본적인 기준안과 어떤 간단한 방송음향설비기준 하나 없이 영어 청취 수험생에게 부정확한 소리를 전달해주는 시스템은 조속히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방송음향시스템이 잘 설치되어 있는 좋은 시험장에서도 좋은 위치에 있는 수험생은 명확한 영어 발음 소리를 듣고 좋은 점수를 얻고, 수험생의 의사와 관계없이 소리명료도가 나쁜 환경의 고사장에서 거기에다 음향의 사각지대에 앉아 불명확한 발음의 소리를 듣고 나쁜 점수를 받는다면 어찌 공평한 영어 청취 시험이라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관련당국에서는 강의실의 방송음향설비 기준안을 마련하여 단순히 소리만을 전달하는 영어 청취력 시험이 아니라 양질의 소리를 수험생에게 공평히 전달하여 어느 수험생이든 공평한 청취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좋은 소리는 소리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소리 품질의 문제이다.

김재평 대림대 교수. 한국방송장비진흥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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